2025년 4월

GLOBAL

시대와 공명한 열정

아카데미 영화 박물관, 봉준호 특별 전시로
그의 업적을 기리다

글 브렌트 사이먼(영화평론가)
사진 앤드루 거, 프레드릭 닐슨

2025-04-16

영화는 문화의 경계를 넘어 사람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힘을 지녔다고 종종 낙관적으로 이야기된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은 보통 두 가지 범주에만 국한되기 쉽다. 하나는 가족이나 연애 등 보편적인 주제를 다룬 감성적인 드라마, 다른 하나는 상업적 성공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끈 흥행작이다.

그렇기에, 보다 복잡한 사회•계급적 문제를 지속적으로 탐구하면서도 이를 초국가적인 공감대로 끌어올리는 감독은 드물다. 봉준호 감독은 그중 한 명이다. 그는 경제적 불평등, 사회적 불안, 환경 위기, 정부 비판, 사회의 무기력 등을 장르영화의 틀 안에서 다루며, 때로는 어둡고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불편하고 충격적으로 풀어낸다.

초기에는 비교적 적은 예산의 한국영화 네 편으로 커리어를 시작했지만, 지난 10여 년간 제작한 영어권 영화 세 편과 함께 그의 명성은 전 세계적으로 급상승했다. 특히 2019년작 <기생충>은 각종 상을 휩쓸며 그의 커리어 사상 최고의 흥행작이 되었고, 전 세계 극장에서 2억 5800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이처럼 여전히 진행 중인 봉준호 감독의 인상적인 커리어는 로스앤젤레스(LA)에 위치한 아카데미 영화 박물관(Academy Museum of Motion Pictures)에서 열리는 특별 전시 <Director’s Inspiration: Bong Joon Ho >를 통해 기념된다. 이 전시는 그의 작품뿐만 아니라 창작 과정, 그리고 영향을 받은 영화들까지 조명하는 최초의 단독 전시로, 대부분 봉준호 감독의 개인 아카이브에서 가져온 100여 점 이상의 오브제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는 <기생충>의 상징적 수석과 가족 사진, <괴물>의 생물 모형, <옥자>의 돼지 캐릭터 머리, <설국열차>의 소품 총알과 군사 메달 등이 포함된다.

전시는 2027년 1월 10일까지 이어지며, 개막 후 3주 동안 박물관의 최첨단 상영관에서는 봉준호 감독의 작품을 조명하는 특별 회고전이 열렸다. 여기에는 봉 감독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들도 함께 소개되었는데, 특히 <더 씽(The Thing, 1982)>의 4K 복원판 상영 후엔 존 카펜터 감독이 직접 참석해 봉 감독과 함께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봉 감독은 곧 제작할 예정인 차기 공포영화의 음악 작업을 77세의 거장 카펜터 감독에게 부탁했고, 두 사람은 이를 악수로 흔쾌히 약속했다.

<Director’s Inspiration: Bong Joon Ho >는 그의 작품뿐만 아니라 창작 과정, 그리고 영향을 받은 영화들까지 조명하는 최초의 단독 전시다

<기생충>의 가족 사진



봉준호 아카이브의 에너지 아카데미 영화 박물관은 LA라는 미국 영화 산업의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지만, 2021년 개관 이래로 다양한 배경과 국적을 지닌 영화인들을 조명하는 데 집중해 왔다. ‘Director’s Inspiration’ 시리즈는 이러한 철학을 직접적으로 반영하며, 지금까지는 미국의 스파이크 리 감독, 프랑스의 아녜스 바르다 감독이 소개된 바 있다. 박물관은 감독의 명성과 업적뿐 아니라, 독창적인 방식으로 예술적 영감을 해석하고 새로운 서사를 개척해 후배 영화인들에게 영향을 미친 인물을 선정한다.

전시 큐레이터 미셸 푸에츠(Michelle Puetz)는 봉준호 감독이야말로 이 모든 기준을 충족하는 인물이라며, “그의 세계적 영향력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4관왕을 수상하면서 아카데미와도 특별한 인연을 맺었죠. 하지만 이번 전시의 핵심은 대중에게 익숙한 <기생충>을 넘어서, 그의 초기 작업과 성장 배경, 그리고 어떻게 아카데미 수상 감독이 되었는지를 심층적으로 조명하는 데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봉준호 감독의 적절성과 상징성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19년 10월,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마블 영화를 “놀이공원 같다”며 “진짜 영화가 아니다”라고 발언한 후, “이게 바로 영화다(This is cinema)”라는 밈이 유행했다. 이후 2021년 5월 봉 감독이 “저에게 그게 바로 영화입니다(To me, that’s cinema)”라고 말한 영상이 확산되며, 이 표현은 새롭게 재해석되어 큰 호응을 얻었다. 이는 영화 팬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봉 감독을 “영화 그 자체”로 상징하게 한 계기가 되었다.

이번 전시는 약 2년 전부터 기획되었으며, 푸에츠 큐레이터는 서울을 두 차례 방문해 봉준호 감독을 직접 만났다. 그의 작업실은 창의적인 에너지로 가득했고, 벽면에는 현재 작업 중인 애니메이션 <더 밸리(The Valley)>의 스토리보드가 가득했다. 봉 감독은 오래된 노트, 각본 초안, 리서치 자료, 소중한 영화 소품, 책, VHS, CD, DVD 등을 한자리에 모아 관리하고 있었다. 푸에츠 큐레이터는 “그는 거의 자신의 아카이브 관리자 같아요”라며 놀라움을 드러냈다.

봉준호 감독의 창작 기록과 아카이브 정신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전시

정확성과 몰입의 집념 관람객과 기자들의 반응 역시 매우 긍정적이다. 전시가 특히 매력적인 이유는, 전시품들이 매우 개인적이고 사적인 성격을 띤다는 점이다. 네바다에서 온 관람객 마커스 애시우드와 그의 아내는 “<기생충>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아 다른 작품도 알고 싶어서 왔어요”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람객은 “그가 어린 시절 TV로 미국이나 유럽의 영화들을 보며 얼마나 분석적으로 받아들였는지를 보고 놀랐어요. 예술이 이렇게 깊이 각인될 수도 있구나 싶더라고요”라고 전했다.

이번 전시는 봉준호 감독의 정신세계를 깊이 있고 폭넓게 보여준다. 어린 시절 그가 직접 그린 만화와 스케치는 정치적 이슈와 사회 변화, 주변 일상 문제에 대한 그의 관심을 보여주며,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의 리서치 노트에서는 관찰력과 인물에 대한 비판 없는 시선이 엿보인다.

봉준호 감독이 얼마나 치밀한 플래너인지도 전시의 주요 포인트다. 많은 감독들이 스토리보드를 사용하지만, 봉 감독의 스케치는 초기 단계부터 놀라운 디테일을 담고 있다. 그는 연세대 재학 시절 학보에 만화를 연재하기도 했으며, 이는 훗날 영화의 샷 앵글이나 배우에게 요구하는 리액션까지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푸에츠 큐레이터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는 영화 작업에 몰입하면 그 세계에 완전히 들어갑니다. 스토리보드를 여러 번 수정하고, 대본 뒷면에 직접 그림을 그리며 장면을 반복해서 다듬죠. 그건 단순한 집착이 아니라, 정확성과 몰입에 대한 집념이에요.”

또 한 가지 인상적인 부분은, 그가 젊은 시절부터 자신의 감정 반응을 분석하고 이해하려 노력했다는 점이다. 군 복무 후 그는 ‘노란문 영화 동아리’를 만들어 서울 일대 대학생들과 함께 영화 감상과 제작 활동을 했다. 당시 한국에서는 해외 영화에 접근하기 어려웠기에, 그들은 VHS 복사본을 돌려 보며 연구했다. 봉 감독은 그 복사본 대여 담당이었다.

그의 노트에는 <파고> <양들의 침묵> 등 영화의 카메라 앵글과 블로킹 분석 흔적이 남아 있다. 그는 이러한 분석을 통해 자신의 감정 반응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영화에 적용해 갔다.

‘노란문 영화 동아리’를 만들어 서울 일대 대학생들과 함께 영화 감상과 제작 활동을 했던 봉준호 감독.
영화적 뿌리와 시네필 시절의 흔적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진이다



봉준호만의 언어로 전시는 대체로 연대기 순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여덟 편의 장편영화에 대한 스토리보드, 대본, 리서치 노트가 주요 소품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한쪽에는 단편영화 영상이 상영되는 어두운 방이 마련되어 있고, 그 옆에는 그에게 영향을 준 20편의 영화 포스터가 언어별로 전시되어 있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싸이코> 포스터도 그의 개인 소장품 중 하나다.

<옥자>의 돼지 머리 인형이 특히 눈에 띈다. 디지털로 제작된 캐릭터지만, 실제 촬영 현장에서 배우들이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만든 실물 모형이다. “그는 컴퓨터그래픽(CG) 환경에서도 인간 간의 교감을 중요하게 여겼어요. 이 인형은 그런 인간애의 상징이에요.”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스토리보드로 가득 찬 방이다. 세 벽면을 둘러싼 스토리보드 사이에는 주요 소품들(<기생충>의 수석, 한국어 해적판 영화 교재 등)이 전시되어 있고, 실제 촬영 장면과 스케치를 비교한 영상도 상영된다. 중앙에는 봉 감독이 실제 사용하는 작업 테이블이 놓여 있는데, 이 테이블은 <설국열차>에서 소품으로도 사용된 바 있다. 푸에츠 큐레이터는 “과거의 도구가 미래를 창조하는 공간이 된다는 점에서 상징적이다”라고 설명했다.

결국 이번 전시는 단순한 영화 기념품 전시가 아니라, 한 젊은 예술가가 무엇에 열정을 가졌고, 그것을 어떻게 분석하고, 자기만의 언어로 승화시켰는지를 보여주는 여정이다. 푸에츠 큐레이터의 말처럼. “이 전시는 제게 매우 감동적이었어요. 팬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전혀 다른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게 되었어요. 그는 약자를 비추는 사람입니다. 그가 그리는 인물들은 전형적인 영웅상은 아니지만, 불공정한 사회 구조 속에서 싸워 가는 인물들이죠.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와 가장 깊이 공명하는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브렌트 사이먼이 직접 촬영한 <옥자>의 돼지 머리 인형

봉준호 감독에게 영향을 준 20편의 영화 포스터들

봉준호 감독 영화의 스토리보드들로 가득 찬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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