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PEOPLE ❶

“다 알더라도 더 알고 싶다”

<프랑켄슈타인 아버지> 강길우 배우

글 _ 김혜선(웹매거진 <한국영화> 편집장)
사진 _ 눈컴퍼니

2025-04-01

강길우의 색은 하나지만 하나가 아니다. 마치 하나의 색이 농도에 따라 달라지듯이 한 몸에서 다양한 캐릭터가 스며 나온다. 섬세하고 처연하다가, 강단 있고 날카로워지며, 절제와 차분함을 드러낸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빈틈, 소박함, 엉뚱함, 조각나고 흔들리는 내면의 풍경을 보여줄 수 있는 배우. 많은 것을 품은 그의 오늘은 그래서 어제나 내일과도 다르다. <프랑켄슈타인 아버지>는 그런 강길우가 <정말 먼 곳>(2020), <초록밤>(2021), <여섯 개의 밤>(2022), <비밀의 언덕>(2022) 이후 꽤 오랜만에 만난 독립 장편 주연작이다.

이제는 <브로커> <서울의 봄> <전, 란> 같은 상업영화와 <재벌집 막내아들> <더 글로리> <악귀> <웰컴 투 삼달리> 등 드라마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얼굴이 되었지만, 독립영화에 대한 그의 애정은 여전히 깊다. “<프랑켄슈타인 아버지> 크랭크 인이 2022년 10월 20일이에요. 한창 상업 드라마들을 할 때 독립 장편 시나리오를 받게 된 거죠. 매우 기뻤고, 마다할 이유가 없었고, 시나리오를 설레는 마음으로 읽었던 기억이 나요.” 마다 않고 끌어안은 영화 <프랑켄슈타인 아버지>에서 강길우는 관객 마음에 모처럼 각인될 뾰족한 캐릭터를 연기한다. 분명 문제가 있지만 응원하고 싶고, 그 마음의 결핍이 읽히는 남자. 아직은 나아갈 용기를 끌어 모아야 하는 어린 어른을.

비호감의 호감, 비윤리의 윤리 성공한 내과 의사 도치성(강길우)은 자기만의 삶의 루틴이 있다. 집 안은 깔끔하게 각을 맞춰 정돈되어 있다. 신발장 안의 신발 각도가 하나라도 흐트러지면 바로잡아야 직성이 풀리는 완벽주의자다. 늘 자신의 주변을 정확히 정돈하지만, 어쩌면 그 또한 자신이 만든 틀 속에서 흐트러짐 없어야 하는 하나의 요소 같다. 주말이면 요트를 타고 물살을 가르기는 하지만 정작 멀리 여행을 떠나지는 못한다. 자신이 정한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는 그에게 어느 날 찾아온 소년 영재(이찬유)가 황당한 협박을 한다. 치성이 17년 전 가난한 의대생 시절 돈이 필요해 불법 판매를 한 정자로 태어났다고 주장하는 영재는 몸에 선천적 결함이 있다면서 자신을 ‘하자’ 있게 만든 치성에게 1억의 손해배상을 청구한다. 정자 불법 거래를 폭로하겠다면서. 치성은 초반엔 세상이 알까 봐 영재에게 끌려다니지만 “너의 ‘하자’가 정말 나에게서 비롯되었는지 확인해보자”고 하면서 반격을 시도한다. ‘하자 체크’를 시작하고 보니 닮은 구석은 없지만 영재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끼는 치성. 그런데 스스로 고아라고 주장했던 영재를 길러준 아버지 동석(양흥주)이 불쑥 등장하면서 세 사람의 관계는 꼬이기 시작한다.

건조한 드라마에서 스릴러의 기운을 풍기다가 의외의 블랙코미디에서 다시 진한 결핍과 속박의 드라마로의 전환. 예측 불허의 전개는 차가워 보이는 의사 가운을 입고 무표정하고 지루해 보이던 치성의 얼굴과 높낮이 없던 목소리를 변화시키며 이야기의 결을 풍성하게 한다. “도치성은 글로 읽었을 때는 비호감인 캐릭터였어요. ‘내가 연기했을 때 관객들 눈에 덜 비호감으로 보였으면 좋겠다’, 그 숙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죠.” 좋은 숙제 같은 캐릭터에 애정을 가지면서 강길우가 세운 목표는 무엇보다 치성이 변화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납득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치성이 자신의 완벽한 커리어가 무너지는 게 싫어서 방어를 하다가 서서히 운동을 좋아하는 공통점(치성은 학창 시절 복싱을 했고, 영재는 자기 몸의 하자를 찾기 전 육상을 했다)을 찾게 되잖아요. 어쨌든 영재는 치성 자신의 DNA를 가진 아이고. 치성이 갖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불편한 기억과 영재가 길러준 아빠 동석과 함께한 기억이 겹쳐지면서 치성이 영재에게 갖는 동질감이 더 커지거든요. 결국 나름의 자기 해방으로 나아가게 되는 치성을 보면서 관객이 응원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어요.”

치성과 영재, 관객의 동질감을 연결해준 디테일은 영화 속 ‘하자 체크리스트’로부터 시작한다. 학습 능력부터 알레르기, 고소공포증, 시력 등등의 항목을 하나하나 확인해 가며 뛰어날 건 뛰어나고 없을 건 없다며 슬슬 우쭐대는 치성과 점점 시무룩해지는 영재. 둘의 모습은 멀다가 가까워지고 사소한 순간에 다시 멀어지는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에 조금씩 다가간다. “사실 ‘하자 체크’는 완벽한 치성에게 있어서 다소 구차하면서 허접한 일이긴 해요. 건물 옥상에 올라가서 고소공포증이 있는지를 테스트한다거나 갑각류 알레르기가 있는지 보려고 바닷가에 가서 생새우를 먹는다거나. 이야기적으로는 치성의 인간미를 보여주는 부분이면서, 치성에게는 ‘하자 없음’을 증명해 문서로 남겨야 한다는 면에서도 중요했죠. 보는 이들은 재미있겠지만 치성에게는 대단히 진지했던 장면이었어요.”

<프랑켄슈타인 아버지> 포스터

좁힐 수 없는 부성의 삼각형 <프랑켄슈타인 아버지>는 강길우에게 배우로서 공부하고 상상해야 하는 기준치를 더 높여준 작품이기도 하다. 주연으로서 혼자 많은 신을 감당해야 할 때 표현이 턱턱 걸렸던 순간들을 넘어서야 했다. 자신의 삶에 무작정 침입한 영재를 보고 느끼는 치성의 첫 감정, 그 경험하지 못한 경험을 상상하고 반응해야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겉으로 드러나는 표정이 크지 않은 치성을 연기하면 할수록 더 풍부한 표현력이 필요했다고 할까. 중반 이후 ‘생물학적 아버지’ 치성이 ‘길러준 아버지’ 동석을 대하는 마음도 그 표현력의 결을 더 세밀하게 다듬어야 하는 지점이었다.

영재 역 이찬유 배우와는 치성과 영재의 관계처럼 천천히 가까워졌다. “치성이 바라보는 영재의 첫 등장이 섬뜩했기 때문에 찬유와 천천히 친해지는 것이 오히려 초반에 영재를 바라보는 치성의 얼굴을 만드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어요. 또 찬유가 말이 많거나 그렇지 않아요. 어찌 보면 영재와 비슷한 부분도 있어요. 시니컬한 느낌도 있고 또 한창 사춘기였고. 한 발 뒤에서 지켜보니까 연기적인 욕심이 굉장해서 배우와 배우로서 대화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한 장면씩 쌓아 나갔죠.”

영재를 사이에 두고 치성이 동석과 ‘부성의 삼각형’을 형성하는 것도 흥미롭다. 동석은 치성과 극단적인 대척점에 서 있는 스타일인 동시에 치성의 아픈 기억을 건드리는 인물이기도 하다. “처음 맞닥뜨렸을 때부터 동석은 치성이 추구하는 삶과는 다른 모습이잖아요. 내일 일을 나가야 하는데 밤새 소주를 마시는 모습도 꼴 보기 싫고. 그 모습이 서서히 치성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면서 동석에게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겹쳐져 보였을 거 같아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싫었고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라는 영재의 모습도 너무 안타깝고. 영재에게 자기 자신이 투영된 거겠죠.” 동석이 보여주는 ‘길러준 아버지’로서의 집착과 ‘생물학적 아버지’를 향한 질투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치성의 부성을 끌어당긴다. <정말 먼 곳>에도 함께 출연했던 동석 역 양흥주 배우의 폭넓은 연기는 강길우에게 “심적으로 마냥 의지하며 촬영할 수 있는” 언덕이 되어주었다.

때로는 폭발적으로 때로는 느릿한 호흡을 교차하면서 ‘부성의 삼각관계’를 만들어준 동석과 영재.영재가 앓고 있는 병과 관련한 후반의 반전 또한 치성과 영재를 연결해주는 하나의 고리이며, 세 사람은 ‘닮았다’는 말의 정의를 숙고하게 하는 캐릭터들이다. “겉모습을 보면 영재는 치성보다 동석과 더 가까이 있죠. 하지만 치성이 영재와 ‘하자 체크’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들이 있잖아요. 영재가 운동을 좋아하고, 뭔가 심장이 뛰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 그리고 대사나 장면에는 안 나왔지만 ‘이 자식 꽤나 집요하네’라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치성도 그런 모습이 있으니까. 겉으로 보이는 것은 동석과 더 가깝지만 치성에겐 뭔가 뼛속 깊이 나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는 장면들이 계속 교차했던 것 같아요.”

좁힐 수 없는 부성의 삼각형을 이야기하는 영화 <프랑켄슈타인 아버지>



누구의 ‘하자’도 아닌 아들 누구에게나 아버지는 있다. 모성만큼 부성도 다채롭다. 하지만 <프랑켄슈타인 아버지>가 보여주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거리는 경험자들에겐 매우 보편적인 것이기도 하다. “촬영하면서 저도 아버지와의 관계를 많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아들에게 아버지는 엄마와 달리 결코 좁힐 수 없는 어떤 거리감이 있긴 하거든요. 살갑지 않다고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아빠와 아들의 관계는 묘하죠.”

그 거리감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치성이 영재의 학교에 가서 아버지를 자처하고 상담을 받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동석이 씩씩대며 치성의 병원을 찾아왔다가 엘리베이터에서 영재와 치성을 맞닥뜨린다. 무슨 자격으로 나선 거냐며 화가 나서 치성을 밀치는 동석. 평소의 분노심을 담아 그런 동석을 한 대 치는 치성. 그리고 쓰러진 동석을 보면서 오히려 치성에게 주먹을 날리는 영재.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영재가 가장 먼저 뛰어나오고, 당황한 치성이 그 뒤를, 가장 지친 동석이 또 그 뒤를 따라 달린다.

“감독님과 제가 서로 언어는 달라서 정확한 표현으로 합쳐지진 않았지만 공통적으로 생각하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영화에 담긴 것 같아요. 그렇게 잡을 수 없는 어떤 거리감이 있어요. 뭐랄까. 약간 부끄럽기도 한, 일방향 같은 사랑이라고 해야 되나요? 그리고 이 장면은 영화적으로는 특히 중요한 장면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자유나 해방을 위해 행동하는 장면이고, 그렇게 막 뛰고 땀을 흘리고 숨을 쉬면서 뭔가 느끼게 되는 순간이니까요.”

치성과 영재, 동석에게 이어지는 부성의 고리는 곳곳에 있다. 특히 영재의 학교 운동장에서 치성이 쥐가 난 영재의 다리를 스트레칭해주는 장면과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달리는 영재를 쫓아가다가 쥐가 나 쓰러진 동석의 다리를 영재가 스트레칭해주는 장면. DNA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과 행동, 그리고 모든 아버지들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영재의 마음이 느껴지는 장면이다. 달리다가 멈춰서고 멈춰진 거리 그대로 좁혀지지 않는 관계 속에서, 아버지들의 아들은 무표정하게 말한다.
“나를 본인들 하자로 만들지 말아요.”
“영재의 그 대사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생각지 못한 부분을 건드리는 이야기이기도 해서. 영재는 동석에게마저 거리를 두고 자기 자유를 찾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둘은 영재에게 심적으로 내팽개쳐진다고 해야 될까요? 아이에게 한 방 맞은 어른들이라고 할 수도 있고.” 강길우가 바라본 두 아버지는 “스스로 온전히 서지 못해서 아이를 통해 자기가 완성되려는 모습”이다. ‘누구의 하자도 아닌 아들’이었어야 했던 것은 두 아버지이기도 하다. 그들 모두 어떤 시간을 힘들게 통과해 온 아들들이기에.

<프랑켄슈타인 아버지>는 모성만큼 다채로운 부성을 다룬다



호기심을 잃지 않는 어른으로 절제된 이미지의 치성을 연기하면서, 의외의 면면을 보여주게 되는 이유는 실제의 강길우가 오로지 절제만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를 정제된 이미지로 보시는 분들이 많아서 그런 캐릭터를 맡게 되지만 저 스스로는 그렇지 않아서 다른 모습들이 연기에 들어가는 것 같아요.”치성을 연기하는 내내 어른의 정의를 고민한 것도 그래서이다. “의사 가운을 입고 가르마를 정갈하게 하고, 뭔가 사회의 어른 같은 모습인데 그 내면은 어른이 아니었거든요. 저 또한 배우로서 사람으로서 그런 껍데기를 입고 치성이라는 인물을 연기해야 되는데, 안도 겉도 어른이 되어야 하는데, 뭔가 막히는 느낌이면서 ‘어른이 뭐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지난해 결혼을 했고, 대한민국의 허리 세대인 40대가 되면서 어른다움에 대한 고민은 더욱 커졌다. “실제 저의 성격은 뭔가 결정할 때 딱 부러지거나 하지 않거든요. 그냥 좋은 게 좋고, 그런 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성격이에요. 연기를 하다 보면 어쨌든 인물의 성격을 디자인하고 선택해야 하잖아요. 그런 것들을 결정하는 것이 되게 고통스럽거든요. 늘 선택을 마주하니까. 하지만 평소에 뭔가 딱 정해 놓고 살지 않아서인지 제가 만나는 인물을 그릴 때 스스로 선입견을 많이 안 가지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다양한 배역들을 만나는 것 같기도 하고. 앞으로도 다양하고 재미있는 작품을 하면서, 제가 이 일을 지루해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어떤 목표를 갖고 나아가야겠다는 생각이 생각대로 되지 않던 시기를 지나, 지금은 그냥 즐기고 싶다는 강길우. 그것은 어른다움을 생각하는 그의 속도와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그때그때 주어진 작품들을 그때그때 느꼈던 생각으로 연기하다 보면 결국은 ‘내가 어떤 노선으로 연기를 해 왔구나’를 돌이켜보게 되겠죠.”

그가 차분하고 담담한 마음으로 맞이할 <프랑켄슈타인 아버지>의 개봉 시기, 4월의 극장가는 팬데믹 시기와는 또 다른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주연배우로서 영화를 공개하는 강길우의 마음도 단순하지 않다. “제 작품이 개봉을 한다는 건 굉장히 기쁜 마음이긴 한데, 솔직히 예전에 비하면 빈 극장에 가는 느낌이에요. 같은 시기 여러 작품들이 개봉하면 경쟁을 하더라도 활기차고 좋을 텐데, 극장에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봐 걱정이 되기도 하고요. 그래서 우리 팀이라도 힘을 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편으론 2023년 <비밀의 언덕>으로 관객과 만났지만 주연을 맡았던 독립 장편영화는 저로서도 무척 오랜만이긴 해요. 많은 분들이 이제 독립영화 안 하느냐고 물으시던데 그럴 리가요. 다시 독립영화 속의 저를 보여줄 수 있는 영화여서 개인적으로 기대와 긴장이 교차합니다.”

배우라는 직업만큼 강길우라는 개인의 삶이 중요하지만, 그는 양쪽의 균형을 잘 유지하리라 여겨지는 어른이다. 무엇보다 소외된 사람들, 조금 더 먼 그늘 아래 있던 누군가를 빛으로 데려오는 역할들을 기다리며 ‘다 알더라도 더 알고 싶어 하고, 호기심을 잃지 않는 어른으로’ 계속 우리 곁에 머무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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