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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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하는 모녀의 지옥도
<침범>
글 _ 남다은(영화평론가)
2025-03-17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은(곽선영)은 수영 강사로 일하며 홀로 어린 딸 소현(기소유)을 키운다. 그러나 한눈에도 모녀 관계는 심상치 않아 보인다. 딸을 바라보는 영은의 표정에는 불안이 가시지 않으며, 그런 엄마를 주시하는 소현의 눈빛은 싸늘하기만 하다.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앓는 아이와 이해할 수 없는 딸을 마주해야 하는 엄마.
<침범>의 1부를 이루는 이 구도가 불러일으키는 상식적인 궁금증은 이런 것들이다. 타인을 해하는 데 망설임이 없고, 감정 동요가 없는 이 아이의 증상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사이코패스를 다룬 일련의 영화들이 병의 기원을 추론하는 과정에 서사 일부를 할애해도 대개 실패의 결론에 이르는 것처럼, <침범> 역시 이에 답하지 않는다. 아니, 이 영화는 그 이유를 추리하는 일에 별반 관심을 두지 않는다. 엄마가 자신을 싫어한다는 딸의 결핍감과 분노가 종종 드러나기는 하지만, 그 감정이 상태를 악화하는 요인이긴 해도 근원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보다 시급한 물음은 따로 있다. 사이코패스인 딸을 둔 엄마는 이 상황을 어떻게 대면할 것인가. 과연 ‘모성’은 이를 끌어안을 수 있을까.
두려움에 마비된 모성
<침범>은 영은이 딸의 사이코패스적인 성향을 의심하거나 부정하는 단계가 지난 뒤, 딸이 이미 이상 행동을 거듭한 이후, 영은의 몸에 소현이 낸 상처가 돌이킬 수 없이 깊게 새겨진 시점에서 출발한다. 1부가 몰두하는 건 딸을 향한 엄마의 중층적인, 혹은 모순된 심정이기보다는 딸의 행동에 무방비한 엄마의 공포, 피로, 체념이다. 소현은 내내 은영의 시야 안에 놓이지만, 은영의 시선을 경유해서 영화가 부각하는 건 그가 딸의 내면과 접촉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점점 더 낯설게 악랄해지는 딸의 면모다. 영화는 영은이 통제하거나 이해할 수 있는 한계선의 완전한 바깥에 소현이 자리한다는 인상을 주는 데 주력한다.
이를 압축적으로 형상화하는 대목이 있다. 소현이 수영장에서 친구를 물속으로 밀어뜨린 날, 영은은 그간 참았던 울분을 터뜨리고 지하주차장에서 뛰쳐나가는 소현을 붙잡지 않는다. 집에 돌아온 영은을 기다리는 건 손에서 피를 뚝뚝 흘리는 친정엄마와 방 안에서 칼로 종이를 찢는 소현의 모습이다. 영은 역시 그의 엄마처럼 소현의 칼에 손이 벤다. 이어지는 장면은 거실에서 마주한 영은과 그의 엄마, 단 두 명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들의 손을 감싼 붕대는 피로 얼룩져 있다.
딸이자 손녀가 휘두른 칼에 다친 채, 무기력하게 어쩔 줄 모르는 두 엄마의 형상도 끔찍하지만, 모녀(영은과 영은의 엄마)가 서로 안쓰러워하는 이 장면에 소현이 배제된다는 점을 주목하게 된다. 이전 장면에서 사악한 행태로 화면에 각인되던 소현은 두 여자의 프레임 외부로 밀려나 어딘가에 고립된 존재처럼, 이들의 ‘정상적’인 프레임에 속할 수 없는 자로 느껴지는 것이다. 영화 2부에서 초췌하게 늙은 모습으로 다시 등장하는 영은의 엄마, 소현의 할머니는 서슴없이 말한다. “걔, 사람 아니에요. 악마예요.”
<침범>의 1부 전반을 채우는 수영장, 즉 ‘물’은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영은이 소현을 제어할 수 있는 곳이다. 발이 닿지 않아 마음대로 몸을 휘두를 수 없는 물 안에서 소현은 ‘악마’는커녕 악동도 아닌 무해한 아이일 따름이다. 소현의 입에서 처음으로 “무섭다, 잘못했다”라는 말이 나오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곳에서야 둘은 엄마와 어린 딸의 평범하고 ‘정상적인’,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위계를 갖는다. 소현이 완전히 무력한 물은 바로 그런 이유로 영은에게는 가장 자유로운 세계일 것이다. 그러나 1부 마지막, 영은이 아무런 희망도 남지 않은 얼굴로 소현을 물 안으로 끌고 간 선택은 결과적으로 이들 모녀 관계를 종결한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둘 중 누가 더 사악한지 판별하기 어렵다. 영은의 행동이 딸과 함께 죽을 계획에서 나온 건지, 딸을 살해할 의도를 품은 건지, 아니면 그저 불운한 사고일 따름인지 정확히 따질 수는 없으나 피로 물든 물속으로 영은이 가라앉으며 1부가 끝난다.
딸 잃은 엄마들, 엄마를 결핍한 딸들
2부는 이로부터 20년이 흐른 뒤다. 세 여자가 있다. 특수 청소 업체에서 일하는 민(권유리), 보육원에서 민을 데려와 함께 살며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는 현경(신동미), 그리고 둘의 일상에 불쑥 끼어든 해영(이설)이 이들이다. 그러나 셋의 동거는 어쩐지 위태로워 보인다. 민은 지나치게 어둡고 해영은 과하게 명랑하다. 또렷이 대비되는 표정과 성격의 두 인물이 공유하는 것이 있다면, 그들의 과거가 베일에 가려져 있다는 점이다. 이들에게는 어떤 과거가 있을까. 누가 1부의 소현일까. 이에 대한 답을 유보하는 방식으로 2부는 긴장감을 쌓아 간다.
서서히 드러나는 진실은 오랜 세월, 이들 각자의 트라우마로 자리한 ‘모녀의 역사’와 관련된다. 현경은 사랑하는 딸을 잃었다. 그 빈자리를 민이 채운다. 민은 어린 날, 엄마가 자신과 함께 죽으려 한 기억으로 여전히 아물지 않은 상처를 안고 산다. 그의 엄마는 광인이 되어 현재 정신병원에 있고, 민은 엄마에 대한 분노를 해소하지 못한 채 임신 중이지만, 아기 아빠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해영을 내심 탐탁지 않아 하던 민은 해영의 가방에서 그의 과도한 밝은 기운에 숨겨진 음습한 과거를 감지한다.
딸을 상실한 엄마 현경과 ‘엄마’를 결핍하고 보육원에서 자란 민, 해영. 세 여자가 이루는 삼각 구도, 달리 말해, 현경을 가운데 두고 유사 딸의 자리를 차지하고픈 민과 해영의 은밀한 내적 경쟁심이 점차 셋의 관계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간다. 2부의 미스터리로 보이던 민의 서사는 어느덧 해영의 지난날을 추적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지만, 영화의 주요 무게는 비밀에 다가가는 민이 아닌, 해영에게로 기운다. 해영의 정체가 밝혀지는 시점부터, 영화는 1부의 소현과 해영의 연속성이자 (앞서 인용한 할머니의 말처럼) 그의 ‘악마성’을 고조하는 장면들에서 찾으려 한다. 생글생글 웃기만 하던 해영의 표정이 교활하게 일그러지고 증오심으로 폭발하며 저돌적으로 돌변한다.
서사의 개연성보다 인물의 사이코패스적인 성향을 재현하는 연출에 중심을 둘수록 심리 스릴러의 기운을 지니던 세계는 불현듯 피 튀기는 하드코어 스릴러로 이행한다. 이러한 급변으로 영화는 장르적 쾌감의 극대화를 욕망하는 것 같지만, 그 전략으로 인해 <침범>의 서사적 뿌리인 ‘모녀 관계’가 일견 피상적인 설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를테면, 1부의 영은과 소현의 관계, 2부의 인물들을 여전히 얽매는 엄마, 혹은 딸과의 기억 등 영화 속 엄마와 딸 사이의 엉킨 실타래는 탐구의 대상보다는 결국 해영의 극단적 폭력성을 전시하는 장면들을 위한 전제로 기능하게 된다. 피와 화염 속 육탄전으로 점철된 클라이맥스 이후, 우리는 해영이 무자비하게 가해한 현경과 겨우 살아남은 민, 그리고 민의 뱃속 태아의 결말을 알지 못한다. <침범>은 대신, 뜻밖의 에필로그로 건너뛴다.
죽음의 굴레에 갇힌 모녀의 세계
화상을 입은 해영이 인적 없는 강가에 이른다. 그때, 강에서 누군가 해영을 향해 걸어오는데, 1부 끝, 수영장에서 피 흘린 채 죽어간 엄마 영은이다. 영은이 해영에게 다가와 포옹해주며 말한다. “고생 많았어. 지옥 같은 건 없어. 어둡고 고요할 뿐이야. 엄마랑 같이 갈래?” 딸을 꼭 끌어안는 영은의 포근한 행동은 이내, 딸을 필사적으로 옥죄어 마치 죽음의 지대로 끌고 가려는 동작처럼 보인다. 영은이 유령으로 기어이 돌아와 1부 마지막에 실패한 시도를 반복하는 것일까. 그러나 해영은 그런 엄마를 냉담하게 뿌리치며 돌로 내리친다. 1부에서 엄마의 애정을 갈구하며 “엄마는 내가 필요 없어요?”라고 서늘하게 묻던 아이는 이제 분노에 찬 눈으로 내뱉는다. “난 고통이 편해요. 지옥은 엄마나 가.” 이곳은 어디일까. 죽음에 이른 해영의 망상일까, 이승을 떠나지 못한 영은의 집착 어린 꿈일까. 아니면, 둘이 마침내 재회한 연옥일까. 어느 쪽이든, 이 에필로그는 사건 이후 대면한 지난 시간의 상흔 같은 것이 아니라, 여전히 끝을 거부하며 버티는 한 세계의 위악적인 초상이다.
분명한 건, <침범>의 에필로그가 두 여자(민, 현경)와 아이가 남겨진 현실 혹은 가까스로 회복된 일상이 아니라, 사이코패스 해영의 초현실적인 지대로 시선을 돌린다는 사실이다. 부드러운 언어로 치장되어도 딸의 사이코패스 성향에 대한 엄마의 혐오는 그대로이고, 엄마를 향한 딸의 증오는 어린 날보다 노골적이다. 그런 면에서 이 마지막은 20년 전 이들의 과거에서 한 치도 나아가지 못한 감정을 얼마간 퇴행적으로 되살리면서도, 서로를 살해하고자 하는 모녀의 집요하고도 불경한 욕망과 무의식을 우회로 없이 형상화한다.
<침범>을 모성 신화와 대결하거나 균열하며 그것에 반문하는 영화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앞서도 언급했듯, 사이코패스의 행각에서 영화적 쾌감을 자아내는 일에 목적을 둔 장르물로서 그 과정에서 오히려 모성 신화에 기댄 세계에 더 가까워 보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영화가 그 신화를 부여잡은 채 감당할 수 없는 혼란에 빠진 개인들, 각기 다른 모양새로 무너져 내려 파멸에 이르고 만 여자들의 이야기라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