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PEOPLE ❷

“이제는 킬러 로케이션의 시대”

나인테일드폭스 황선권 대표

글 _ 김혜선(웹매거진 <한국영화> 편집장)
사진 _ 이승재(한국경제매거진 기자)

2025-03-17

기회는 한밤중에 찾아왔다. 2013년 어느 광고 회사의 해외 촬영팀 소속이었던 황선권 대표는 둘둘 말린 대형 지도를 들고 밤늦게 사무실을 방문한 서울영상위원회 직원과 마주앉았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한 편을 서울에서 촬영하는데, 어떻게 진행하면 될지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어떤 작품인데요? 마블이요? <어벤져스>요?” 그간 해외 작품들의 한국 촬영에 몇 번 참여한 적은 있었지만, 그날의 만남은 지금까지의 경험과 안목의 스케일을 완전히 업그레이드시켰다.

황선권 대표가 해외 영화들의 한국 프로덕션을 진행하게 된 것은 2013년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하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서울 촬영부터다. 한국 유닛의 로케이션 매니저로 참여해 안전 통제 인원 100~200명을 지휘하며 마포대교, 상암동, 청담대교, 강남 일대 도심 촬영을 진행시켰다. 이후 할리우드 대형 스튜디오들과 일하면서 신뢰를 쌓았고 맡은 작품 수를 늘려 가다가 2019년, 강윤태 공동대표와 나인테일드폭스를 설립해 더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한국 문화를 콘텐츠화하려는 해외 스튜디오들의 요청을 기막히게 해결해 온 프로덕션의 마법사라고 할까. 그는 ‘프로덕션 서비스’가 미래 한국영화 산업의 무기가 되기를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바라고 있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한국 프로덕션과 관련, 규모와 촬영 문화의 전환점이 되었다

Q나인테일드폭스는 해외 작품들의 한국 촬영을 위한 ‘프로덕션 서비스’를 하는 회사다. ‘프로덕션 서비스’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해외의 대형 스튜디오나 제작사, 영화인들이 한국에서 촬영을 하려고 해도 한국 지사가 없고, 한국을 잘 모른다. ‘프로덕션 서비스’는 그럴 때 한국 내에서 견적 관리, 캐스팅, 로케이션, 전체적인 스태프 구성, 장비 관리, 보험과 법률 처리까지 해주는 ‘한국 오피스’라고 할 수 있다. 요즘 해외 제작사들이 촬영을 하러 한국에 정말 많이 온다. 한국 배우들을 캐스팅한 경우 그들 스케줄을 맞추려고 한국에서 촬영하는 경우도 꽤 있다.

Q해외 영상영화 업계와의 작업은 확실히 규모가 크고 다양하다. 해외 스튜디오들을 위한 ‘프로덕션 서비스’가 국내 영상영화 업계에 기여한 부분이 있을까?

<에이지 오브 울트론> 촬영을 진행하던 당시, 한국 영상영화 업계에는 오버타임 페이(초과근무 수당)를 지불하는 문화가 자리 잡지 않은 상태였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현장 스태프들에게 오버타임 페이를 지급했는데, 작품에 참여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그 경험을 하면서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던 것 같다. 한국 촬영 문화의 변화에 기여한 면이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큰 기여는 한국 작품들의 마켓 사이즈를 키우는 효과다. 영상 업계 종사자들의 경우 사실상 많은 작품들이 촬영되는 게 유리하다. 해외 작품들이 한국에서 촬영을 하게 되면, 경계가 넓어지고, 관련 산업도 커진다. 더 많은 사람들이 계속 일을 할 수 있어서 고용 창출의 효과도 크다.

더불어 노동 문화에도 기여한다. 넷플릭스가 한국에 진출한 이후, 넷플릭스와 작업해본 프로덕션들이 늘어났다. 한국 넷플릭스는 프로덕션 운영 시 미국 본사의 방식을 적용한다. 그러다 보니 한국 영상영화 업계도 그 영향을 받는 것 같다. 해외 제작사들이 지닌 운영 방식의 장점들을 우리도 적용하고 있다. 가장 크게 적용한 것은 안전 관리 부문이다. 할리우드는 안전 관리가 엄격하다. 안전 관리 담당자와 메딕(Medic: 의사 혹은 의과생, 준 의료활동 종사자, 긴급 의료 대응자 등 의료 일을 하는 사람)이 촬영 현장에 상주한다. 요즘 한국에서도 메딕이 상주하는 촬영 현장이 늘어나고 있지만, 안전 관리자가 상주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나인테일드폭스는 늘 안전 관리자를 상주시키고 촬영을 진행해 왔다. 우리와 함께 일하셨던 한국 감독님이 차기작인 넷플릭스 작품을 촬영할 때 현장에 안전 관리자를 두셨다고 들었다. 한국 촬영 현장도 점차 바뀌어 가는 단계다.

Q넷플릭스 프로덕션 시스템의 장단점은 무엇인가? 더불어 디즈니플러스, 애플TV, 아마존 프라임, 파라마운트 등 해외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업체들마다 프로덕션 시스템에 차이가 있나?

넷플릭스는 문서 작성을 매우 중요시한다. 프로덕션이 다소 비대해지고 불필요한 문서들을 생성해야 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어떤 문서들은 중요한 부분들을 상세히 체크해준다는 장점도 있다. 넷플릭스 안의 여러 부서들이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한다. 법률적인 부분이나 보험 관련, 안전 관리 등등. 체계적으로 산업화, 시스템화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넷플릭스, 애플TV, 아마존 프라임과 작업했다. 다 미국 본사와 일한 거다. OTT 미국 본사, 미국 대형 스튜디오들은 비슷한 방식, 비슷한 스튜디오 시스템을 갖고 있다. 일정한 기준이 있어서, 한 곳에서 작업했던 방식을 다른 플랫폼과의 작업에 적용할 수 있다. 프로덕션 운영이 산업화가 되었다는 것을 느낀다. 한국영화의 경우,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개인 임금은 단건 계약이다. 그런데 미국은 각 노동조합이 잘 운영되고 있고 조합별로 어느 정도 임금 가이드라인이 있다. 산업적으로 투자하는 입장에서는 유리한 구조다.

Q프로덕션 서비스의 여러 업무 가운데, 가장 골치가 아프거나 가장 즐거운 파트가 있다면?

단연 로케이션이다. 사실 내 역할은 한국 오피스의 제작 PD, 라인 프로듀서인 셈인데, 내 업무에서 가장 창의적인 파트가 로케이션이다. 로케이션이 사실상 모든 스케줄을 정한다. 좋은 장면을 위해 어려운 로케이션들을 풀어냈을 때 얻는 기쁨과 자부심이 있다. 그 과정은 너무 힘들지만.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로케이션이 가장 어려웠던 프로젝트는 애플TV의 <파친코>(시즌 1(2022), 시즌 2(2024))다. 시대극이어서 가능한 로케이션이 한정적이었다. 실내 신의 경우 시즌 1은 캐나다 밴쿠버, 시즌 2는 토론토에서 촬영했다. 그런데 시즌 1·2의 외부와 야외 신들은 전부 한국에서 찍었다. 대부분의 한국 드라마나 영화들의 경우, 야외 신은 이미 만들어져 있는 오픈 세트장을 활용한다. 촬영 효율을 위해 로케이션을 한 곳으로 몰아서 찍고. 그런데 <파친코> 제작진들은 다양한 곳에서 촬영하고 싶어 해서, 시즌 1과 2 모두 한국 전역에서 촬영을 했다. 부산 영도의 자연 배경은 영도에서 찍었지만, 부산 영도에 나오는 집들은 안동에서 찍는 식이다. 시즌 1의 관동대지진 장면도 전부 한국에서 찍었다. 목포, 부산, 합천, 안동, 대전, 서울 등을 계속 이동하면서 촬영했다.

코로나19인데다가 시대극이어서 로케이션이 힘들었던 <파친코> 시즌 2. 좋은 장면을 위해 어려운 로케이션들을 풀어냈을 때 얻는 기쁨과 자부심이 있다



Q어쩐지. 한동안 윤여정 배우를 전국 곳곳에서 만났다는 팬들의 제보가 있었다.(웃음) 로케이션지 이동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도 많았겠다.

<파친코>는 이동할 때마다 300~400명의 스태프들이 움직였다. 평균 식수 인원이 약 280명 정도였고, 그 인원들에 보조출연자들 100~200명까지 더해진 규모다. 장비와 물자, 인력 등을 모두 관리해야 하니 정말 힘들었다. 이동 시 동원되는 차량이 100대가 넘었다. 한정된 시간 안에 집중적으로 준비해서 움직여야 하니,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호텔 예약도 문제였다. 그 많은 인원들이 한꺼번에 묵을 수 있는 호텔이 없어서 분산해 투숙시켜야 했다. 누락되는 인원이 없도록 신경 써야 했고. 제작팀의 고생이 상당했다. 시대물을 찍는 게 그만큼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로케이션을 위해 끝없이 크리에이티브를 발휘해야 한다. 그래도 힘든 만큼 보람이 있다.

Q한국영화, 드라마의 해외 프로덕션을 진행한 경우도 있나?

이정재 감독의 영화 <헌트>(2022)의 해외 촬영 코디네이션을 맡아서, 첫 인트로 뉴욕 카퍼레이드 장면과 도쿄 분량 일부를 함께 도와서 진행하였다. 코로나19로 인해 계획되었던 태국 촬영이 어려워지면서 극 중 태국 장면을 한국에서 촬영했는데, 관련해서 필요한 여러 가지를 태국에서 공수해 오기도 했다. 드라마는 <도깨비>(tvN, 2016~2017)의 캐나다 퀘벡 촬영을 진행했고, <미스터 선샤인>(tvN, 2018)의 초반부 신미양요 전투 장면에서 러시아에서 범선을 대여해와서 촬영을 했고, 일본 마쯔리 공연 출연자들을 한국으로 데려와 일본 장면을 촬영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사랑의 불시착>( tvN, 2019) 몽골 촬영(북한 분량인데, 기차역 기차 촬영 분량을 몽골에서 진행), <작은 아씨들>(tvN, 2022)의 싱가포르 촬영 등을 진행했다.

코로나19로 인해 태국 장면을 한국에서 촬영한 영화 <헌트>

Q해외 영상 관계자들에게 추천하는 한국의 촬영지는 주로 어디인가? 유형을 나눌 수 있나?

현대적인 서울을 보여줘야 할 때는 여의도를 많이 간다. 모던함과 한국적인 모습이 합쳐진 이미지를 원할 때는 청계천 쪽이다. 내가 한국 유닛의 로케이션 매니저로 참여했던 <블랙팬서>(2018)처럼 사이버 펑크적인 배경, 화려한 서울의 네온과 밤거리를 보여줄 때는 종로를 많이 택한다. 실제 종로 젊음의 거리에서 여러 작품들을 촬영했다. 퓨처리스틱한 이미지가 필요하면 역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좋다. 한강공원은 서울의 전경을 보여줄 때 많이 간다. 조금 애매한 신들은 일단 한강이다.(웃음) 노들섬이 잘 정비되어서, 요즘 해외 작품들이 노들섬에서 많이 촬영한다.

한국적 색채가 많이 드러나길 원할 경우, 북촌이나 서촌을 선호했다. 지금도 한옥을 보여주기 원하면 한 신 정도 북촌에서 촬영한다. 한국 배경의 어두운 이미지를 얻고 싶을 때는 세운상가 일대를 추천한다. 밤에 촬영하기 좋다. 강남역이나 강남 일대도 상징적인 곳들이 많아서 자주 간다.

한국에서 100% 촬영했던 넷플릭스 시리즈 <엑스오 키티> 시즌 1(2023), 시즌 2(2025)도 우리가 진행했다. 틴에이저 쇼이기 때문에 학교라는 고정 로케이션지가 필요했다. 시즌 2는 성수동에서도 촬영한 바 있다. 물론 다른 장소에서 찍어서 성수동 느낌이 나도록 할 수 있지만, <엑스오 키티> 시리즈의 성격상 반드시 서울의 핫플레이스에 가서 찍어야 한다는 제작진의 요구가 있었다.

부산 광안대교에서 촬영한 영화 <블랙팬서>

Q프로덕션 서비스를 맡아 온 작품들 중 대표작을 꼽는다면.

개인적으로 이 업에 종사한 지 13년 정도 되었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을 시작으로, <센스 8> 시즌 1·2, <배트맨 vs. 슈퍼맨>의 한국 플레이트 촬영, 또 다른 마블 영화 <블랙팬서> 한국 촬영, 넷플릭스 시리즈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시즌 3와 여기서 파생된 시리즈 <엑스오 키티> 시즌 1·2(모두 100% 한국 촬영), 아마존 프라임 시리즈 <버터플라이>를 손꼽을 수 있다. <엑스오 키티>는 시즌 3에도 참여한다. 현재 프리 프로덕션 중이다. 2024년 한국에서 80회 전회를 촬영한 <버터플라이>는 한국계 배우 대니얼 대 킴이 제작과 주연을 맡은 시리즈다(한국 배우 박해수와 김태희도 출연한다). 스릴러 시리즈의 프로덕션 전체를 운영했다는 데 특히 큰 의의가 있다.

나인테일드폭스가 운영하는 로케이션 팀 인원이 보통 한국영화, 드라마 로케이션 팀 인원보다 많다. 한국영화 시스템에서는 로케이션 팀을 따로 두지 않고 제작 팀에서 로케이션 담당 제작 부장이 혼자 진행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우리는 6명에서 10명이 운영하고, 긴 시간 동안 섭외를 한다. <블랙팬서>의 부산 촬영도 2주 만에 끝냈다. 그게 가능했던 것은 강도 높은 프리 프로덕션 3개월, 그 앞에 소프트한 프리 프로덕션 6개월이 있었기 때문이다. 촬영 현장 통제도 세분화되어 있다. 로케이션 팀 외에 교통 통제만 담당하는 팀을 따로 둔다. 어마어마한 양의 일을 소화할 수 있을 만큼의 인력 구성을 하다 보면 현장 스태프가 250에서 300여 명이 된다.

Q프로덕션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좋은 인력들을 채용하는 것도 중요하겠다. 한국이 글로벌 문화에 익숙해지면서 과거에 비해 인력 구성이 수월해진 면도 있지 않나?

정말 그렇다. 일단 <에이지 오브 울트론> 때부터 함께해 온 핵심 멤버들이 있다. 그리고 그 시절에는 영어 잘하는 한국인 스태프 찾기가 어려웠는데, 요즘은 채용 공고를 내면 지원자가 어마어마하게 많다. 2024년에 해외 작품 세 편의 프로덕션을 동시에 진행했다. <버터플라이>와 <엑스오 키티> 시즌 2, 그리고 <더 리쿠르트>다. 각 프로덕션마다 200명씩 전체 600명의 인원이 필요했는데, 좋은 인력들이 많아서 잘 진행할 수 있었다. 우리 프로덕션을 경험한 한국 스태프들이 갈수록 누적되다 보니 가능해진 것 같다. 요즘 한국 스태프들은 해외 스태프들과 소통할 때 영어가 유창하지 않아도 적극적이다. 한국 문화 자체가 많이 바뀌었다. 일하기에 좋은 환경이다.(웃음)

한국에서 촬영하는 해외 작품 숫자가 엄청 많은 건 아니지만, 여러 기회가 열려 있다. 프로덕션을 진행할 때 어시스턴트 수준의 업무가 많다. 어시스턴트로 두각을 나타내면 점차 더 중요한 포지션을 맡기면서 함께 성장한다. 실제로 <블랙팬서> 때 함께 일했던 스태프 한 분은 아마존 프라임 스튜디오에 가 있다. 우리 프로덕션을 경험한 많은 분들이 한국 넷플릭스에 가 있기도 하다.

Q나인테일드폭스의 고용 창출 효과가 상당하다. 한국에서 해외 관련 프로덕션 서비스 회사들은 몇 군데나 될까? 시장의 규모를 파악할 수 있을까?

국가별로 두각을 나타내는 회사들이 있다. 프랑스영화들의 한국 프로덕션을 많이 하는 회사가 있고, 일본·중국영화가 전문인 회사들도 있다. 미국 작품들의 프로덕션을 하는 회사가 가장 많다. 영화, 드라마뿐 아니라 해외 리얼리티 쇼, 다큐멘터리, 광고 등도 한국에서 촬영하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 ‘토르’로 알려진 크리스 헴스워스가 서울 신촌에서 글로벌 예능 프로그램을 촬영한 것이 알려진 것처럼. 다큐 및 예능 프로덕션에 특화된 회사들도 당연히 있다. 한두 작품 정도의 프로덕션을 운영해본 회사까지 포함한다면 약 25개 정도의 회사가 이 시장에서 활동하는 것 같다.

우리 회사에는 광고 프로덕션 팀이 따로 있다. 해외 광고의 한국 촬영은 한국 배우들이 지금 매우 주목받고 있기 때문에 많이 진행된다.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업계 종사자로서 이런 산업 기반을 만든 것은 크게 세 가지라고 생각한다. <기생충>, K-팝, 그리고 <오징어 게임>. 그 덕분에 해외에서 한국을 콘텐츠화하고 싶어 하는 요청이 많아지고 있다. 우리 회사에 프로덕션 서비스 견적 문의를 하는 해외 스튜디오 작품들이 1년에 10건 정도다. 그중에서 20~30% 정도가 실제로 진행된다. 최근에 견적 문의를 받은 시나리오 세 편은 모두 영화였다.

한국이 배경도 아니고 한국 문화가 소재로 나오지도 않는 작품들이 한국 촬영 스튜디오에서 영화의 대부분을 촬영하고 싶다며 견적 문의를 해 온 경우도 있었다. 그중 한 작품은 배경이 뉴욕인데, 한국에서 다 촬영하고 싶다는 거다. 미국 공포영화 전문 제작사 블룸하우스도 우리 회사에 연락을 해 왔다. 블룸하우스 내부에 한국인 스태프가 있다. 블룸하우스 공포영화들이 대부분 스튜디오 촬영을 하는데, 한국에 있는 촬영 스튜디오 리스트를 전부 달라면서 문의 끝에 이렇게 말했다. “한국 로케이션 인센티브는 여전하죠?”

Q한국 로케이션 인센티브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여기나? 그 이유는?

요즘 미국 작품들이 미국 내에서 프로덕션을 운영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지난해 미국 배우 방송인 노동조합, 작가 조합의 파업 영향이 컸다. 더불어 운수 노동조합도 상당한 임금 인상을 요구해서 자연스럽게 캐나다나 영국에서 프로덕션을 진행하다가, 이들 국가의 임금도 오르면서 동유럽으로 넘어갔다. 헝가리가 로케이션 인센티브도 많고 촬영 스튜디오도 잘 되어 있어서 할리우드 대형 작품들이 촬영을 많이 했다. 이런 시기에 안타깝게도 한국의 로케이션 인센티브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적다. 한국 로케이션 인센티브의 한도는 너무 낮고, 한국 내에서 촬영해야 하는 비율은 너무 높다. 한국 촬영 비용의 20%~30%를 인센티브로 돌려주는데, 그 액수가 작품당 2, 3억 원에서 최대 4억 원이다. 반면 다른 나라들은 로케이션 인센티브로 전체 제작비의 20~30%, 많게는 40%까지 돌려주기도 하며 총 예산도 한국보다 높다. 해외 작품들이 한국 촬영을 위해 한국의 영화, 드라마, 예능 스태프들을 고용하고, 한국에서 로케이션 인센티브로 인건비를 지원해준다면 사실상 선순환이다.

세계적으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은 지금이야말로 한국의 프로덕션 서비스가 산업으로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다. 한국은 촬영 인프라가 매우 잘 갖춰져 있지 않나. 촬영 스튜디오, 장비, 인력, 좋은 배우들이 있다. 유일하게 아쉬운 게 로케이션 인센티브다. 요즘 한국의 영화, 드라마 제작사들도 해외 촬영 미팅을 하면 가장 먼저 물어보는 게 그 나라 인센티브다. 그걸 기반으로 제작비 견적을 짜기 때문이다.

Q현재 아시아에서 해외 프로덕션을 유치하기 좋은 나라들은 어디인가?

할리우드 스튜디오가 해외 프로덕션을 아시아에서 하겠다고 생각하면 가능한 곳은 네 나라다. 중국, 일본, 한국, 태국. 촬영 인프라가 갖춰져 있는 나라들, 장비를 외국에서 가져오지 않아도 되는 나라들이다. 하지만 중국은 정치적인 불안정성이 높고 스크립트 검열 문제도 있어서 선호하지 않는다. 한국은 일본보다 프로덕션 운영 비용이 저렴했다. 인프라도 잘 되어 있어서 촬영하기 좋고. 동아시아 룩이 필요할 때는 한국에서, 동남아시아 룩이 필요할 때는 태국에서 촬영하는 경우가 많았다. 태국은 프로덕션 서비스가 어마어마한 규모의 산업이다. 그런데 일본에서의 비용이 최근 한국과 비슷하게 낮아졌다. 심지어 2024년부터 일본 정부가 대대적으로 해외 작품들의 촬영 유치에 나서고 있다. 일본의 로케이션 인센티브가 작품당 10억 단위라고 한다. 한국이 뒤처지고 있다.

Q해외 콘텐츠들의 한국 촬영은 지속될까? 그렇다면 주의하고 강화해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

요즘 일본과의 공동제작 콘텐츠가 특히 많다. 일본 쪽 배우들의 개런티가 아주 높지 않다 보니, 이 점을 활용해 일본 배우와 한국 배우를 적절히 캐스팅한 후 한국에 와서 촬영하는 형태의 공동제작이 많아지고 있다. 붐이라고 할 정도다. 한국 제작사들이 외국 감독을 캐스팅해서 공동제작을 하는 경우도 많이 생기고. 같이 하려는 움직임이 확실히 많아졌다.

한국영화 산업은 매우 성숙하다. 많은 해외 프로덕션을 동시에 운영할 수 있을 정도로 준비된 스태프들이 한국 내에 굉장히 많다. 예전에는 해외 작품들이 한국에서 촬영을 하면, 그 영화를 통해 해외 관광객이 늘어날 거다, 더 많은 사람들을 한국에 오게 해야 한다는 데에만 초점을 맞췄었다. 이제 그 개념이 바뀌어야 한다. 관광이 아닌 산업으로 접근해야 한다. 다행히 그런 인식이 점점 정책에 반영되기 시작하는 것 같다.

결국 지역의 로케이션 개발이 필요하다. 경상북도 문경에 좋은 촬영지가 있다. 쌍용의 폐공장이다.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 1, 2부도 거기서 찍었다. 그런데 한동안 문경 세트장에 촬영을 받지 않았다. 너무 아깝다. 그런 촬영 자산은 활용해야 한다. 속된 말로 ‘촬영 맛집’을 개발하면 가치가 상당할 거다. 민간인이 접근하기 힘든 정부 시설들을 촬영을 위해 열어주는 경우, 그 자체가 어마어마한 촬영장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철도공사가 허가하지 않아서 철도 신을 촬영하기가 어려운데, 철도 신을 자유롭게 찍을 수 있는 장소가 생긴다면 거긴 바로 핫플 촬영장이 된다. 톰 크루즈의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는 매번 새 작품을 할 때마다 연락이 온다. 그들이 원하는 건 핵 시설, 수소 탱크 같은 어마어마한 것들이어서 결국 성사되지 않았지만.(웃음) 여러 영상위들이 각 지역의 다양한 로케이션을 더 많이 개발했으면 좋겠다. 한국은 서울이라는 도시, 한국 문화 자체가 킬러 콘텐츠이긴 하지만, 이제는 한국의 킬러 로케이션을 더 많이 만들어볼 때다.

경상북도 문경의 쌍용 폐공장에서 촬영한 영화 <외계+인> 1, 2부

한국의 이곳저곳에서 촬영한 <센스 8>, <엑스오 키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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